‘언론의 자유’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특히 엄격한 유교 이념과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 속에서도 ‘언론’의 개념은 존재했고, 일부 지식인들은 그 자유를 확대하고자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습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실학자들은 단지 학문과 경제 개혁만을 논한 것이 아니라, 여론의 중요성, 언로(言路)의 개방, 왕의 귀를 여는 정치를 주장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식 ‘언론 자유 운동’이라 부를 만한 흐름이었으며, 실록과 문집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 조선에서 ‘언론’이란 무엇이었나?
조선의 언론은 오늘날처럼 신문이나 방송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에서 말하는 ‘언론’은 왕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의미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도가 존재했습니다:
- 사간원 – 국왕의 언행을 감시하고 간언하는 기관
- 사헌부 – 백관의 비리를 감찰하고 탄핵
- 홍문관 – 학문과 자문을 담당, 왕과의 대화창구 역할
하지만 이 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형식화되고 권력에 종속되었으며, 언로는 점차 막혀갔습니다. 이때 실학자들이 나서 비판의 목소리를 냅니다.
2. 정약용 – “언로는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
대표적 실학자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군주의 잘못을 바르게 말하는 자가 없으면, 임금이 제 스스로를 속이고 백성을 해치게 되니, 이는 나라의 대위기라 할 수 있다.” – 『경세유표』
정약용은 사간원, 사헌부 등의 언론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며, 왕의 귀에 거슬리는 말은 모두 ‘불충’으로 몰린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학자와 선비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를 주장합니다.
3. 박제가 – “사람들이 말할 수 있어야 나라가 살아난다”
박제가는 『북학의』를 통해 백성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그는 특히 **백성의 민심**이 왕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말하지 못하게 하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정치의 부패요, 관리의 교만이다.” – 『북학의』
그는 실질적 소통 없는 정치 구조를 ‘죽은 정권’이라 표현하며, 하급 관료나 백성들도 건의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4. 홍대용 – “간언을 막는 국가는 결국 쇠망한다”
홍대용은 조선 사회의 언로가 “양반 내부의 정치 게임”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하며, 실질적인 언로 확장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담헌서』에서는 왕과 백성 간의 쌍방 소통을 주장하며, 서양의 여론 체계와 군주 견제 장치를 흥미롭게 소개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조선의 언론 구조를 비판합니다.
“백성이 침묵하면 왕이 외롭고, 신하가 아첨하면 왕이 눈먼다.” – 『담헌서』
이러한 사상은 조선 후기 개혁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5. 실학자들이 요구한 ‘언로 개방’의 본질
실학자들의 언론 비판은 단순한 정치 비판이 아니라, **시민 참여적 정치 구조로의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 왕의 잘못을 자유롭게 지적할 수 있는 구조 마련
- 백성의 소리를 직접 수렴할 수 있는 창구(상언 제도) 확대
- 관리 탄핵권을 가진 언론 기관의 독립성 확보
- 서얼, 중인, 평민 등 다양한 계층의 발언권 보장
이는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참여 민주주의**의 초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조선 후기 언론의 실질적 한계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영조, 정조와 같은 개혁군주조차도 언로 확대를 ‘위험한 정치적 리스크’로 인식했고, 많은 간언자들은 파직, 유배, 심지어 사사(死赦)까지 당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약용 본인도 유배형을 받아 오랜 세월 지방에서 지내야 했고**, 박제가, 홍대용 역시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는 언로 개방이 제도보다는 **군주의 기질과 정치적 의지에 좌우되던 시대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7. 조선시대 언론 비판이 주는 오늘날의 의미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언론 비판은 단지 과거의 이상론이 아닙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현대적 시사점을 갖습니다:
-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의 독립성 필요성 강조
- 국민의 여론이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의 중요성
- 말할 수 있는 자유와 정치 참여의 연계 인식
특히 오늘날처럼 언론의 독립성, 표현의 자유가 도전을 받는 시대에, 200여 년 전의 실학자들이 남긴 언로 개방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 마무리 요약
-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언론 자유와 언로 개방을 꾸준히 요구
- 정약용, 박제가, 홍대용 등이 대표적인 비판자
- 왕과 백성 간의 소통 구조 부재를 주요 문제로 인식
- 제도 개혁과 참여 정치 사상을 통해 민주적 가치 제시
- 현대적 의미로서의 언론 자유와 연결 가능한 역사적 사례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언론 비판’은 단지 학문적 담론이 아닌,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천적 제안이었습니다.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언론과 민주주의를 돌아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