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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스팸메일? – 중종 때 등장한 무단 광고지 사건

by 인포-한국사 202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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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메일’ 하면 현대의 이메일 마케팅이나 휴대폰 문자 광고를 떠올리기 쉽지만, 조선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정보 유포 행위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특히 중종(中宗) 연간에는 무단으로 광고지를 인쇄해 유포한 사건이 발생해 조정이 이를 강력히 단속하는 사례가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중종시대에 발생한 불법 광고 전단 사건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정보 통제 시스템, 인쇄물 관리 제도, 표현 규제 등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에도 광고지가 있었다?

조선은 활판 인쇄 기술이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고려 말에 금속활자가 이미 등장했고, 조선 초기에는 간행물, 시험 공고, 관청 문서 등 다양한 인쇄물이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민간에서 인쇄물을 제작하려면 반드시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사적으로 문서를 배포하는 것은 불온문서, 유언비어로 간주되어 엄중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이 발달하고 문해율이 높아지자, 일부 상인과 주술업자, 사설 교육자들이 ‘광고성 전단’을 제작하여 유포한 사례가 실록에 나타납니다.

2. 📌 사건 개요 – 중종 20년(1525), 한양 거리에서 무단 광고지 발견

“도성 남문 부근에서 알 수 없는 종이 수십 장이 흩어져 있어 이를 수거하니, 글에는 ‘만병통치약 판매’, ‘한문 교습생 모집’ 등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관아의 허가 없이 인쇄된 것으로 밝혀졌다.” – 『중종실록』

이 문건들은 무허가 인쇄물이었으며, 당시 포도청은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문’으로 판단하여 즉각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조사 결과, **서울 근교의 개인 문방에서 몰래 인쇄된 것**으로 드러났고, 인쇄공과 의뢰인은 각각 곤장형과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3. 광고 내용의 유형

해당 사건에서 문제 된 광고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약방 광고 – “3일이면 낫는 해열단, 통증완화 명약”
  • 서당 모집 – “글을 모르면 출세도 없다. ○○서당 모집중”
  • 주술 상담 – “하늘의 기운으로 길흉을 점칩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무해한 홍보성 문구처럼 보이지만, 조선에서는 **국가의 허가 없이 인쇄된 문서는 모두 ‘사문(私文)’**으로 간주되어 불법이었습니다.

4. 왜 광고지를 금지했는가?

조선 정부가 인쇄물을 엄격히 통제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유언비어 확산 차단: 허위 정보로 민심을 흔들 가능성 방지
  • 국가 권위 보호: 공문서 외 문서의 위조·혼동 방지
  • 사상 통제 목적: 종교·주술·예언서 유포 제한
  • 사회 질서 유지: 과도한 상업성 및 개인 홍보 규제

따라서 개인이 제작한 광고지는 단순한 ‘홍보’를 넘어, **체제 위협 요소로 간주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인쇄물 단속 기관: 교서관과 형조

조선에서 인쇄물은 다음과 같은 기관을 통해 통제되었습니다:

  • 교서관(校書館): 서적 인쇄 및 교정 담당. 관 인쇄물 전담
  • 형조(刑曹): 인쇄물 위반 사건의 조사 및 형벌 담당
  • 포도청: 거리 감시 및 무허가 문서 발견 시 조사

무단 인쇄물이 발견되면 인쇄 장소를 추적해 **문방(文房) 폐쇄 및 담당자 형벌**이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조선의 검열 시스템’이 존재했던 셈입니다.

6. 민간 문서의 증가와 제도의 충돌

조선 후기에는 인쇄 기술과 문해율이 높아지며 민간 인쇄물이 증가했습니다. 이 중 일부는 상업 광고, 종교 홍보, 정치 풍자를 담고 있었고, 이를 단속하려는 조정과의 충돌이 빈번해졌습니다.

일례로, 18세기 후반에는 한양에서 **‘예언서 전단’이 밤중에 벽에 붙었다가 사라지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조정은 이들을 ‘사이비 서적 유포자’로 간주하고 포도청에 비상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7.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 조선의 광고지 사건

중종 연간의 무단 광고지 사건은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 정보 통제의 역사적 기원: 표현의 자유와 국가 통제의 오랜 긴장
  • 상업과 정치의 경계: 개인 홍보가 체제 비판으로 해석되던 시대
  • 기술 발전과 제도 충돌: 활판 인쇄의 확산이 가져온 사회 변화

즉, 조선에서도 정보 확산에 대한 욕구는 존재했으며, 이를 억누르려는 제도와의 갈등이 반복되었습니다. 지금의 스팸메일, 허위광고 단속 등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 마무리 요약

  • 중종 20년, 한양에서 무단 광고지 유포 사건 발생
  • 약방, 서당, 점술 등 상업성 광고가 문제됨
  • 교서관, 형조, 포도청 등이 인쇄물 단속 담당
  • 조선 정부는 무허가 인쇄물을 ‘사문’으로 간주해 강력 단속
  • 오늘날 표현의 자유와 정보 규제의 역사적 뿌리로 해석 가능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상품, 기술, 신념을 알리고자 했고, 인쇄 기술은 그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체제가 이를 두려워했기에 ‘조선의 스팸메일’은 단순한 정보가 아닌 ‘위험한 문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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