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독서를 좋아했던 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과거 시험장 안에서 '누가 가장 오래 책을 읽는가?'를 겨루는 책벌레 대결을 벌이도록 명했고, 끝까지 남은 이에게 장원 선발의 영광을 주었습니다. 이 밤샘 독서 대결은 학문과 체력을 동시에 요구한 정조다운 실험이었습니다.
밤새 책을 읽어야 합격
조선의 임금 중에서도 정조는 유독 책을 사랑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매일 새벽까지 책을 읽었고, 신하들에게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자주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조가 한 번은 과거 시험장에서 특별한 시험을 열었다고 합니다. 바로 ‘정조의 책벌레 대결’이라 불리는 밤샘 독서 시합입니다. 그날의 목적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책을 읽으며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정조는 과거에 응시한 여러 응시자 중 일부를 골라 한 방에 모으고, 일정한 분량의 책을 앞에 두었습니다. 시험관은 그들에게 밤을 새워 책을 읽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중간에 졸거나, 책을 덮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탈락이었습니다. 결국 이 시험은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요구하는 독특한 방식이었습니다. 정조의 책벌레 대결은 실제로 왕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진행됐고,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새벽이 되어도 끝까지 남아 있던 응시자는 단 한 명이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장원 선발의 영광을 안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시험 일화가 아니라, 정조가 인재를 선발할 때 얼마나 독창적이고 치밀하게 접근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선의 시험 문화와 책벌레 장원
책벌레 대결은 오늘날 듣기에는 다소 기발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조선 시대의 시험 문화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과거시험은 단지 글솜씨만으로 평가되지 않았고, 수험자의 인내력과 학문에 대한 태도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밤샘 독서처럼 장시간 집중력을 요구하는 시험은, 실제 사서삼경이나 경서 공부를 얼마나 깊이 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실제 유물이나 문헌에서도 정조가 이와 같은 방식의 시험을 치른 정황이 여러 차례 확인됩니다. 『홍재전서』에는 정조가 신하들의 학문적 열정을 독려하기 위해 독서 토론과 야간 독서회를 정기적으로 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정조가 직접 운영한 규장각에서는 일정 기간 책을 계속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해 발표하는 연습이 시험의 일환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정조의 책벌레 대결’ 같은 장원 선발 시합은 당시 학문을 바라보는 시각과 제도 속에서 중요한 실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편 규장각에는 정조가 직접 필사하거나 보관했던 서책과 과거시험과 관련된 문서들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시험 응시자의 기록, 평가 기준, 그리고 특이한 시험 방식에 대한 언급들이 남아 있어,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밤샘 독서가 단순한 시험이 아닌, 정조 시대 인재 양성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자료들을 통해 더욱 선명해집니다.
조선의 공부는 체력전이었다
정조의 책벌레 대결은 현대의 시험과 비교해도 매우 특별한 형식이었습니다. 지금은 시험 시간이 정해져 있고, 체력보다는 지식 중심의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교육 문화는 조금 달랐습니다. 지식도 중요했지만, 그것을 얼마나 끈기 있게 이어갈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샘 독서를 통해 장원 선발을 한다는 아이디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진짜 공부의 깊이를 시험하는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 학생들에게는 다소 버겁게 들릴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공부에 대한 태도와 의지를 가늠하는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정조는 몸이 약한 신하나 학자들도 새벽까지 독서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규장각 학사들에게는 정기적으로 독서 계획표를 제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정조의 책벌레 대결은 그렇게 실제 정책과 연결된 사고방식이었고, 일화라기보다는 문화적 풍경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라톤 공부, 고시촌의 불 꺼지지 않는 밤처럼 공부와 체력이 연결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조는 그런 의미에서 조선 후기의 '공부 철학자'였으며, 장원 선발이라는 명예를 단순히 실력보다 태도와 끈기를 중심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공부는 단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하는 일이라는 것을, 정조는 밤새워 책을 읽는 시험을 통해 말하고 있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