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실제 있었던 조선시대 '유기견 포획단' 기록

by 인포-한국사 2025. 7. 11.
반응형

오늘날에도 도시에서 유기견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시대 한양에서도 유기견과 들개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유기견 포획단'이 실제로 운영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시대 유기견 문제의 실태와 그에 대응하기 위한 포획 활동, 관련 행정 기록을 중심으로 당시의 '유기견 포획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 유기견 문제의 배경

조선시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한양과 주요 지방 도시는 인구 밀도가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기견과 들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유기견은 주로 기르던 개가 버려지거나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 들개는 산이나 외곽에서 무리를 이루고 도심으로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 들개가 사람을 물거나, 가축과 어린아이를 공격하는 사건이 빈번했습니다.

특히 봄철과 겨울철에 개들이 배고픔에 못 이겨 마을로 내려오는 사례가 많았으며,*이는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2. 유기견·들개 포획 관련 기록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경국대전』, 『한성부일기』 등에는 유기견과 들개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룬 기록들이 등장합니다.

“한성 도성 안에 떠도는 들개들이 밤마다 짖고 다니며 상인을 놀라게 하니, 포도청에 하명하여 이를 잡아 처리하도록 명하였다.” – 『영조실록』

“올겨울 한양 성문 밖과 청파(靑坡)에 야견이 떼로 몰려들어 민심이 불안하니, 금일로 포작(捕作)을 시켜 포획하라.” – 『정조실록』

이러한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유기견과 들개 포획이 실제로 공식 명령으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포획을 담당한 조직과 인원

포도청(捕盜廳)

주로 유기견과 들개 포획 업무는 포도청에서 담당했습니다. 포도청은 본래 도적과 치안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었지만, 시정(市政) 행정도 담당했습니다.

  • 포도군(포졸)들이 야간 순찰과 함께 들개 포획을 병행했습니다.
  • 대규모 포획이 필요할 경우, 포작(잡는 전문 인부)을 모집하여 동원했습니다.
  • 포획 도구는 그물, 나무창, 올가미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포작(捕作)

포작은 임시 고용된 민간 인부로, 유기견 포획을 위한 전문 인력에 해당합니다.

  • 한성부에서 공식 고용하거나, 일정 보수를 지급하고 고용했습니다.
  • 포획 성공 시 마리당 은전이나 쌀로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 주로 노숙자, 품팔이꾼, 하층민들이 참여했습니다.

포작은 때로는 야간에 활동하기도 하며, 도성 외곽에서 유기견 무리를 쫓아냈습니다.

4. 포획 방식과 절차

조선시대 유기견 포획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졌습니다.

  • 먼저 각 관청에서 들개나 유기견이 출몰하는 지역을 조사했습니다.
  • 포도청이나 한성부에서 포획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 포졸 또는 포작이 조직되어 포획 활동에 나섰습니다.
  • 포획 후에는 개체 수를 신고하고, 필요 시 즉각 처리하거나 멀리 방출했습니다.
  • 사망한 개체는 매장하거나 소각하였습니다.

공공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어린이 보호구역이나 시장, 주요 도로에서는 집중적으로 포획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5. 유기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조선 후기 문헌에는 유기견과 들개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인식도 나타납니다.

  • 유기견 문제는 도덕적 문제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개의 충성을 저버리고 함부로 버리는 것은 인륜에 어긋난다”고 비판했습니다.
  • 반면 들개 문제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어 빠르고 강경한 대응이 이루어졌습니다.
  • 특히 어린아이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면 여론의 요구로 대대적인 포획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동물 문제와 인간 사회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6. 유기견 포획단의 유산과 의미

조선의 유기견 포획단 기록은 단순히 과거의 흥미로운 사례를 넘어, 오늘날 도시 동물 관리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 공적 기관이 시민 안전을 위해 동물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현대 시정 행정과 맥을 같이합니다.
  • 유기견 발생 원인에 대한 도덕적 반성과 사회적 논의가 이미 존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 동물 보호의 관점은 아직 부족했지만, 공공 안전과 공동체 관리를 위한 제도적 대응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시대에도 현대적 행정 기능의 원형이 상당 부분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 마무리 요약

  • 조선시대 한양과 지방 도시에서는 유기견과 들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 포도청과 포작을 중심으로 유기견 포획단이 실제로 운영되었습니다.
  • 포획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시행되었으며, 마리당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 유기견 문제는 도덕적 비판과 사회적 대응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 조선 유기견 포획 기록은 현대 도시 동물 관리 행정의 역사적 사례로 의미가 있습니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는 늘 고민과 해결책을 찾아왔습니다. 조선시대 '유기견 포획단' 기록은 과거에도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의식이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단면입니다.

반응형